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르헤 전투 (문단 편집) === 배치 및 진행 과정 === 크라수스의 의견에 따라 로마군은 거대한 직사각형 진형으로 포진했다. 보병들이 바깥 쪽에 줄지어 배치되었고 그 안에 보급품 수송대와 기병대가 위치했다. 이는 파르티아의 대규모 기병대에게 측면을 잡히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배치였으나 기동성의 현저한 저하를 가져왔다. 수레나스는 처음에는 카타프락토이를 이용한 공격 겸 탐색전을 시도했다. 로마군의 시야 범위에 접근한 카타프락토이들이 위장용으로 입고 있었던 겉옷들을 벗어던지고[* 파르티아의 카타프락토이들은 위장 겸 장식용으로 화려한 겉옷이나 망토들을 걸쳤다. 화려한 옷이 어째서 위장용이 되는가 의아하지만, 사실 파르티아의 주력부대인 궁기병들은 대부분 밝은 색조의 옷을 입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섞여들어 눈에 잘 띄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번쩍이는 갑옷을 과시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정면 돌격을 시도했지만 애초에 숫자가 1,000명을 약간 상회하는 규모밖에 안 되는 데다가 로마군이 한치의 동요도 없이 굳건하자 카타프락토이들을 뒤로 물린 수레나스는 궁기병들을 내보냈다. [[스웜 전술|넓게 퍼진 궁기병들은 순식간에 로마군의 사방을 에워싸고 화살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크라수스 측의 경기병과 경보병들이 맞서 싸웠으나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화살의 비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큰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해 파르티아 기병의 화살 공격은 잘 막아낼 수 있었던 중무장 보병인 로마 군단병들이 근접 전투를 위해 전진했으나 발빠른 궁기병이 거북이같은 중보병들에게 잡힐리가 없었다. 이때 등 뒤로 활을 쏘면서 도망가는 파르티아 기병들 때문에 '''[[파르티안 샷]]'''이라는 말이 생겼다. 게다가 방패로 미처 가리지 못한 팔과 다리에 화살을 맞는 부상병들이 속출했다. [[테스투도|귀갑 진형]]을 갖추면 화살은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기동성과 근접 전투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바람에 카타프락토이 기병들의 장창 돌격에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사람들은 35,000명이나 되는 로마 중무장 보병을 1,000명이나 1,000명을 약간 상회하는 파르티아군의 카타프락토이 기병이 어떻게 큰 타격을 줬냐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건 대략 다음과 같다. 로마군의 조직은 대대, 중대, 소대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는데 한 낮의 사막의 고열에 탈진한 로마군이 카타프락토이 기병의 강력한 장창 돌격 공격을 받자 소대는 우왕좌왕했고, 그것이 중대와 대대에까지 악영향을 미쳐서 조직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것이었다. 어떤 자료에서는 파르티아군의 카타프락토이 기병이 활용한 4m 이상의 장창이 로마군 중무장 보병 2명을 한꺼번에 꿰뚫었다는 말도 있었다. 참고로 전투에서 자주 있거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거기다가 카타프락토이 기병들은 장창 돌격으로 로마군의 진형을 무너뜨린 이후에 숫적 열세로 금방 퇴각하는 걸 반복해서 피해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고 한다. 물론 일격에 로마군이 전부 박살난 건 절대 아니었지만 앞서 언급한 사막의 폭염 및 체력 저하에다가 크라수스의 로마 군단 훈련 부족,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기병을 능가하는 파르티아의 카타프락토이를 처음 접한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로마군에 안 좋은 결과를 다수 발생시켰다. 파르티아군의 카타프락토이 기병이 돌격해서 로마군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물러나면 뒤이어서 다시 파르티아군의 궁기병대가 실행하는 중장거리 합성궁 사격이 계속되었다. [[파일:attachment/final-stages1.jpg]] 오도가도 못하게 된 크라수스는 파르티아군의 화살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고대 전장에서 숙련된 궁수는 10분에서 15분 정도면 자신이 소지한 화살을 모두 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금만 견디면 로마군이 반격할 차례가 온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수레나스는 크라수스의 의중을 진작에 간파라도 한 듯 작정하고, 수천 개의 화살을 싣고 온 낙타와 짐마차들을 이용해 궁기병대에 끊임없이 화살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크라수스는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별동대를 조직했으며, 아들인 푸블리우스 크라수스가 갈리아에서 데려온 1,000명의 갈리아 중무장 기병들을 포함한 별동대를 이끌고 파르티아군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파르티아 궁기병들을 추격하다가 역시 화살 소나기에 고전했고, 얼마 않있어 카타프락토이 기병들의 정면 돌격을 당했으며, 곧이어 측면과 후면을 둘러싼 파르티아 궁기병에게 퇴로를 차단 당했다. 갈리아 중무장 기병들은 기마전때 일부 기병들이 카타프락토이의 마갑(馬甲)이 미처 가려주지 못하는 말의 배나 말의 다리를 창으로 찌르는 등 투혼을 발휘하며 끝까지 싸웠지만 전력의 열세로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를 비롯한 1,000명 모두가 전멸을 면하지 못했다. 일설에는 푸블리우스가 갈리아 중무장 기병의 전멸 직후, 자살했다고 한다. 아들이 위험에 처한 것을 파악한 크라수스는 로마군에게 전진을 명령했지만 화살을 보급받은 궁기병들의 역습으로 오히려 진형이 흐트러지고, 여기에 카타프락토이들이 다시 장창 돌격을 가하여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창대에 매달린 아들 푸블리우스의 잘린 머리를 보게 된 크라수스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그는 서둘러 남은 군대를 이끌며 근처의 고지대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이때 수천 명의 부상병들을 전장에 버려 두고 퇴각했으며, 이들은 모두 파르티아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다음날 양군은 교착 상태에 놓였고, 수레나스는 크라수스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참담한 패배와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크라수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로마군 병사들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크라수스를 끌고 나가다시피해 회담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두 발로 걸어나온 크라수스를 본 수레나스는 상당히 과장된 말투로 로마의 장군이 말을 타지 않고 자신의 다리로 걸어 나오다니 이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인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니, 자신의 진영을 향해 말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곧 기수가 말을 한 마리 끌고 왔는데, 평범한 말이 아니라 온 몸에 화려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치장한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자신을 모욕하기 위한 행동임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던 크라수스는 정중하게 거절하려 했으나, 수레나스는 협박의 가까운 태도로 그 말에 타기를 요청했다. 크라수스가 마지못해 말에 오르자, 갑자기 말을 데려온 파르티아인 기수가 말을 미친듯이 채찍질하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도록 만들었다. 크라수스가 사색이 되어 어쩌지도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자, 크라수스를 호위하며 나온 로마군 병사들은 이런 무례한 태도에 분개하며 이를 제지하기 위해 수레나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수레나스는 애시당초 크라수스를 죽일 계획이었고, 호위병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크라수스 역시 미쳐 날뛰는 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낙마하여 땅바닥에 처박혔고, 파르티아군 병사 중 한 명이 칼을 뽑아 크라수스를 살해해버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파르티아인들은 그의 탐욕을 조롱하기 위해 크라수스의 목구멍에 녹인 황금을 들이부었다. 협상 장소에서 파르티아군이 크라수스를 잡으려고 하자 로마군 장교가 상관이 포로로 잡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직접 찔러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은 로마군은 도주를 감행했지만 이미 사막 깊숙히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파르티아 기병의 화살 과녁 신세가 되면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거의 40,000명에 달하던 로마군 중 20,000명이 죽고, 10,000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파르티아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당연하게도 검이 주무기인 군단병으로 말의 무게 + 기수의 무게 + 기수의 갑옷 무게와 말갑옷의 무게 + 4m 이상의 장창으로 돌격하는 카타프락토이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으며, 궁기병이야 활로 장거리 사격하며 접근전을 피했기에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궁기병이든 카타프락토이든 호신용 칼 한두 자루는 있어서 근접전에 들어갔어도 창이나 활을 버리고 칼을 뽑아 싸웠거나 적이 완전히 붕괴되어 추격할 때는 가지고 있던 칼로 퇴각하던 적병을 공격했을 거라는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자료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10,000명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잘 수습하여 시리아 속주까지 퇴각하는 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